[3.00] 대명사란?

대명사¹⁾의 ‘대’는 대신할 대(代)입니다. 대명사는 명사를 대신하는 말입니다. 세상 온갖 것들은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들만큼이나 많은 게 그것들을 일컫는 명사입니다. 그에 비해 그것들을 대신하는 단어의 수는 극히 적습니다. 소, 말, 연필, 책, 컴퓨터……, 이 모두를 대신해 간단히 ‘그것(it)’이란 대명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대명사가 명사를 대신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혜원은 조선후기의 유명한 화가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첫 문장은 ‘혜원’이란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소개한 뒤 다시 그 이름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이름을 대신하는 대명사를 쓰게 됩니다. 둘째 문장의 ‘그’가 바로 앞에 나오는 ‘혜원’이란 명사를 대신하는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대명사를 명사를 대신하는 말 정도로 생각하는 건 충분치 않습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아가씨가 거리를 걷는다.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아래 문장의 ‘그녀’는 대명사입니다. 이 대명사가 대신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가씨’라고 하면 뭔가 이상합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아가씨’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데 ‘멋지게 차려 입은’은 명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명사는 ‘명사를 중심으로 그것을 꾸미는 말까지 전체(명사구)’를 대신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²⁾

때론 쓰임을 가지고 대명사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앞서 ‘혜원’이 나온 예문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혜원’이 ‘소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미 소개되어 알려진 것에 말할 때 대명사를 쓴다고 합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아가씨’를 ‘그녀’라 부르는 것도 같은 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아가씨’가 소개되었으니 다음부터는 ‘그녀’라는 대명사를 써서 짤막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도 약간의 문제는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명사를 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대명사 ‘그’가 가리키는 게 누구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대명사 ‘그’를 써서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 묘한 것이다.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어.”

이 또한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것’이 뭔지 알았다면 ‘그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딱히 뭐라 말할 수 없으니 ‘그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어의 대명사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미 말한 것을 대신해 쓰기도 하지만, 뭔지 모르는 것을 말할 때 쓰기도 합니다. 우리말의 대명사와 차이가 있다면 종류가 더 많다는 것과 더 자주 쓰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말은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고 나서, 그 이름을 다시 반복해 말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니 ‘그녀’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반대입니다. 앞서 나온 이름을 자꾸 반복하면 아주 거북합니다. 대명사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그녀’와 같은 말들을 쓰는 범위가 우리말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녀는 오늘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그는 장난이 심하다.”

초등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우리말로 이렇게 말한다면 몹시 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라면 이때 he(그)나 she(그녀)같은 대명사를 써야 어색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갓난아기에게도 she(그녀)나 he(그)를 아무 부담없이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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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로는 pronoun[próunàun 프로우나운]입니다. pro는 ‘대신하다’, noun은 ‘명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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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사나 명사구 대신에 쓰는 낱말. 예를 들자면, he(그), it(그것), hers(그녀의 것), me(나에게, 나를), them(그들에게, 그들을) 등” 《옥스퍼드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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